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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인사이트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부모 아래 자란 경우 _________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

by 아트온다 2024. 2. 10.

 

 

 


 

 

 

★ 부모에게 받은 상처

★ 불우한 유년 시절

★ 정서적 결핍을 극복한 상담가의 마음 치유기

 

 


 

 

 

-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 / 원정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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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   ||

저자 : 원정미

캘리포니아에서 심리치료사다. 

어린이와 부모를 상담하고 교육을 하고 있다. 

 

 


 

 

 

-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 / 원정미 -

 

 


 

“며칠 전부터 느껴졌던 어른들 사이의 냉기가 드디어 터진 것이다. 저녁에 아버지가 오면 두 번째 전쟁이 시작되겠지. 이번엔 얼마나 갈까? 일주일? 아니면 한 달? 그동안 또 쥐죽은 듯이 살아야 한다. 나는 어른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숨소리도 내지 못했다. 정말 지긋지긋했다. 도대체 이 싸움은 언제 끝날까? 아니, 끝이 있기는 한 걸까?”

-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 / 원정미 -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엄마와 아빠가 자주 싸웠다는 사실이 내 안에 ‘정보’로 남아 있다. 싸웠다는 건 분명하지만 장면에 대한 기억이 잘 없다. 특이하게도 과거 기억을 잘 못하는 나는, 그래서 마음이 편안했지만, 그러면서도 의문이 들었다. 

 

왜?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걸까?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기억이 왜 뇌의 어딘가에 저장되지 않은걸까? 

 

저장은 되어 있을 것이다. 뇌의 어딘가에 꼭 숨어서 장면으로 떠오르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장면 기억이 없는 것일까? 


 

그것은 ‘괴로움’때문이라고, 주관적 분석을 해본다. 엄마와 아빠는 많이 싸웠다. 물건도 던져졌다. 욕설도 오갔다. ‘죽음’이라는 단어도 섞여 있었다. 피도 보였던 것 같다. 이 모든 중심에는 아빠가 있었고 그런 아빠가 내 눈엔 괴물 같이 보였다. 그 괴물을 힘껏 맞서 보려 하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나약한 저 여린 여자는 바로 나의 엄마였다. 

 

잘못이 무엇이었건 간에, 나의 눈에 아빠는 난폭한 괴물이었고 엄마는 괴물에 당하는 약한 존재였다. 세상 물정 모르고 순하디 순한 성격으로 어떻게 저런 괴물같은 아빠를 견디며 살아 왔는지, 때론 불쌍하고 애처롭게 느껴졌다.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는 건 ‘저주’다. 부모는 나에게 태어날 때부터 ‘싸움으로 점철된’ 환경을 제공했다. 밖에서는 술에 쩌들고, 집에 와서는 폭언과 싸움이 난무했다. 술에 깨고 나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나’할 정도로 아빠는 다른 사람으로 돌변해 있었다. 


 

아마도 아빠는 자신이 술에 취한 행동에 대해 ‘부끄럽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괴물인지 인간인지 분간도 안가는 행동을 몇 십년이나 이어서 할 수 있을까? 

 

엄마는 약자였고 그에 딸린 나 역시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하는 약자였다. 경제적 독립이 어려웠던 엄마는 그런 모든 수모를 견뎠다. 난 그런 수모를 보고만 있을 수밖에,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단, 그나마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조금이라도 싸움이 덜 나도록 엄마가 지시하는 거짓말을 아빠에게 대답으로 해주는 것. 난 그렇게 엄마가 시키는 거짓말을 아빠가 질문할 때 답을 하곤 했다. 


 

둘 사이의 목격자는 나 뿐이었고, 사건 당사자인 엄마에게 물어봐야 실체적인 답이 안 나올 거라 판단한 아빠는 나를 추궁했다. 어렸던 나. 추궁당하며 공포에 떨었다. 

 

아빠의 존재는 그런 것이다. 세상에 없었어도 될 뻔 한 존재가 나의 부모로 자리 잡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빠만 없으면 온 세상 평온할 것 같았다. 그런 유토피아를 어렸을 때부터 꿈꿨지만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도 아빠라고 멀리서 지내는 나를 걱정해주곤 했다. 고통을 주는 가해자이자 부모로서 부성애도 갖고 있는 그런 모순적인 존재. 인연을 뗄 수만 있다면 어떻게서든 떼고 싶었다. 

 

 


 

 

-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 / 원정미 -

 

 


 

 

아빠의 성격은 소심하고 여리다. 불만이 있다고 말 한마디 못하는 천상 소심쟁이다. 그러다 보니, 사고는 항상 가족 내에서 터졌다. 사회생활 하느라 받은 온갖 스트레스를 밖에서 소화하지 못하고 집 안으로 고스란히 가져 와서는 약자인 아내와 자식에서 퍼부어 풀어버렸다. 

 

40년 이상을 부대끼며 살았던 가독.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족이라는 연결고리가 때론 족쇄처럼 느껴졌다. 시대는 다르지만 각자가 살아온 습대로 생각은 개인의 기준에 갇혀 있어고, 기준이 협소할 수록 서로간의 오해와 불신을 쌓여만 갔다.

 

얽히고 설킨, 이 관계를 어떻게든 좋게 풀어보려던 마음이 산산조각 무너진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 순간 깨우칠 수는 있어도 본래의 성격으로 관성처럼 돌아간다는 것, 40년이 되도록 부모로부터 마음을 케어받지 못했는데, 그저 자식이라는 이유로 부모의 모든 행태를 포용할까?


 

적어도 포용할 수 있으려면 내가 무너지지 않는 선이어야 한다. 그 선을 넘어섰을 때는 아무리 가족이라도 ‘남’보다 못한 인간이 된다. 

 


 

“매일이 살얼음판이었던 집에서 나는 죽고 싶었다. 그러나 밖에서 보면 우리 집은 평범하고 정상적인 가정처럼 보였다. 삼시 세끼를 걱정해야 할 만큼 가난하지도 않았고 부모님 모두 술, 외도, 도박, 사치 등과는 거리가 먼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분들이었다.”

-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 / 원정미 -

 

 


 

 

 

-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 / 원정미 -

 


 

 

현관문 밖에서 아빠의 발자국소리만 들려도 공포감이 밀려 왔다. ‘또 술에 취했겠지?’ 의심은 현실이 되었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아빠의 목소리가 점점 커질때마다 심장 소리는 빨라졌다. 

 

닭장같은 아파트에 살던 나는 아빠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옆집에 들리겠거니, 하며 싸우는 날에는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옆집 아랫집 모두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소리를 들었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왜 이런 확신이 들었는고 하니, 옆집에서 싸울 때 그렇게나 싸우는 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이 아닌가.

 

방음이 전혀 되지 않는 아파트였다. 아마도 천 번 싸우면 천 번 다 소리가 들렸을 거란 생각을 하니 엘리베이터 타기 전부터 옆 집 사람과 마주치노라면 그리 어색하던 것이었다. 


 

웬만하면 피했다. 인사도 피하고 싶었다. 어쩌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현관문을 열려는데 밖에서 옆집 사람 소리가 나면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현관문 안에서 기다리곤 했다. 딱히 옆집에 잘못한 건 없지만 수치심에 스스로 주변 사람들을 피해다녔다. 그런 집에서 지금까지도 20년을 넘게 엄마와 아빠는 살고 있다. 

 

왜? 정작 모든 소란스러움의 당사자는 ‘수치심’이 없는걸까? 

 

이 모든 과정을 40년을 겪으면서도 난 단 한번도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행이 10년을 서울에서 생활했고 가족과 떨어져 지냈다. 그동안은 집안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나 자신을 케어하기에도 버거운 서울살이를 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버거운 서울살이가 낫다. 서로를 보듬고 마음을 나눌 가족에서 당하는 고통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괴로움이다. 타인이 주는 가해와 가족이 주는 고통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죽고 싶지는 않았지만 아빠가 죽었으면 하고 생각한 적은 많았다. 저 인간만 없으면 평온할 텐데, 먹고 사는 문제고 뭐고, 일단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였으나, 나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저 떨어져서 지내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가족에게서 자란 탓에 마음이 병들어서인지 사회생활은 적응하기 힘들었고 결국 고향으로 내려오게 됐다. 서울에 상경한 뒤 다시 유턴해서 고향에 내려와 산지 10년이 넘어가고 있다. 여전히 변함없는 엄마와 아빠는 싸울 거리가만 있으면 싸워댄다. 

 

집요와 집착, 강박이 심했던 아빠는 의심의 고리들을 무쇠처럼 엮어 가고 있었고 그런 아빠의 틈에서 숨을 쉬기 위해 거짓말을 일삼던 엄마는 거의 알리바이 전문가 수준이 될 정도로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 없을 만큼의 ‘거짓말 고단수’가 되어 있었다. 

 

 

 


 

 

 

-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 / 원정미 -

 

 


 

 

어디까지 믿어야 하고 어디까지 걸러 들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불쌍해서 모든 걸 믿고 대하면 엄마는 자신이 살아 남기 위해 나에게 거짓말을 해댔다. 그럴 때마다 배신감에 치를 떨었고, 결국은 가족이라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존재들이라면 ‘가족의 인연을 떼는 것’이 맞지 않나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 / 원정미 -

 


 

 

 

“어린 시절 양육자로부터 느껴야만 하는 사랑받는 느낌, 안전하다는 느낌에 대한 기억이 없으면 성인이 되어서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루고 안정된 관계를 만드는 데 큰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세상과 타인을 향한 믿음과 안정에 대한 뇌 회로가 형성되는 대신 의심, 경계, 불안, 불신에 대한 뇌 회로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지속되는 정서적 부재와 방임은 성폭력이나 신체적 학대만큼 파괴적인 영향을 준다.”

-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 / 원정미 -

 

 


 

 

‘왜? 난 사회생활이 잘 안되는 것일까?’ 누구나 사회생활은 힘든 것인데 왜 유독 난 더 힘들게 느껴지는 걸까? 나 자신을 들여다 봤다. 유독 한 가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있었다. 

 

말과 행동에 다른 의도가 심겨져 있을 때, 그 의도를 포착하는 순간부터 괴로워지기 시작한다.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인 추측이긴하지만, 그리 틀리지도 않는 것 같다. 왠지 모를 인간의 의도에 대한 레이더망이 예민하게 발달했던 것 같다. 

 

말과 행동의 이면에 있는 의도를 습관처럼 분석했다. 난 왜 그토록 ‘숨겨진 의도’에 집착했던 걸까? 


 

나를 위하는 척, 나에게 배려하는 척 하는 행동과 말에서,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진짜 ‘의도’와 일치할 때는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서로 어긋나 있다는 것이 느껴질 때는 항상 괴로움을 동반했다. 

 

‘심리’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것도 아닌데, 주관적인 해석만으로 내린 결론을 굳게 믿고 있다. 그 결과를 철석같이 믿으며 상대의 의도를 파악한 나의 마음은 그로부터 점차 멀어져 간다. 이러한 상황이 사회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주 일어났다. 

 

행동과 말은 어김없이 오갔고, 그 안에 내재된 실체적인 심리를 분석했다. 좋은 의도는 잘 없었다. 좋지 않은 의도는 좋은 척으로 숨겼다. 모순이 내 눈에는 왜 이토록 잘 보였던 것일까? 예민한 성격탓일까? 


 

아마도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눈치를 많이 보게 되면서 형성된 습관이 아닐까? 둘의 싸움에서 어디에도 의지할 수 없었던 나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아빠가 묻는 대로 눈치껏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눈치껏 행동해도 결과는 항상 나빴다. 

 

이미 의심으로 가득찬 아빠에게 내가 어떠한 대답을 한 들 들릴리 없었다. 물어 볼 사람이 없어서 아빠는 나에게만 추궁했고, 추궁을 당한 나는 눈치껏 답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는 진실이 필요치 않았다. 의심에 버금가는 답을 필요로 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었고, 그저 평온한 가족의 관계를 원하던 어리디 어린 나만 있을 뿐이었다. 

 

 


 

 

-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 / 원정미 -

 

 


 

 

 

-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 / 원정미 -

 

 


 

“어린 시절 나는 어머니와 버스를 타면 항상 불안했다. 억울하고 힘든 결혼 생활에서 도망치고 싶은 어머니가 나 몰래 버스에서 혼자 내려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 / 원정미 -

 


 

 

엄마가 도망칠 수 있을거란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 도망칠 능력이 없었다. 돈을 벌 재주도 없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천진한 소녀였다. 나를 20살때쯤 나았으니 아빠와의 만남은 훨씬 그 이전부터였을 것이다. 

 

아빠로부터 일방적인 구애를 받았던 엄마는 집요한 대시를 기어이 거절하지 못했다. 애초의 만남부터가 잘 못되었다. 차라리 내가 태어나지 않더라도 그 만남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마음은 벌써 저 어딘가로 도망치고도 남았을 엄마. 그러나 벗어나지 못했다. 아빠의 테두리에서 벗어나면 무얼 먹고 사나? 그렇다고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혼자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빠가 돈도 제대로 안 벌고 매일 술주정에 기어코 엄마는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에서 고향까지 혼자 버스를 타고 내려온 적도 있다고 했다. 


 

내가 10대가 되고 20대가 되면서 엄마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제발 좀 벗어나라’, 뭐가 되었든, 아빠의 감옥에서 훨훨 벗어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지만, 엄마는 기회를 엿보다가도 이내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또 싱글벙글 아빠의 울타리를 찾아 들어 갔다. 참 멘탈이 좋기도 하구나. 

 

어쩌면 엄마가 그토록 청소에 집착한 이유가 불안을 떨치고자 했던 게 아니었을까? 영혼이 반쯤 빠져 버린 상태로 몸이 내려 앉는 피곤함을 등에 업고서도 청소를 해댔다. 밥을 먹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밥을 한 술 뜨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또 반찬 통을 쓱쓱 닦으며 냉장고와 싱크대를 분주히 오갔다 했다. 

 

도저히 조용히 지긋이 밥을 먹는 법이 없었다. 차 한잔 마시면서 서로 마주보며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이리도 어려운 것일까? 딸과 엄마의 이 흔한 일상도 나에게는 꿈같은 환상이었다. 

 


 

 

“나는 지금도 안방에 누워 있던 어머니의 뒷모습을 기억한다. 홀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는 어머니는 만지기만 해도 부서질 것 같았다. 어머니는 자주 우울했고 자주 아팠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어머니는 억울한 일이 너무 많았고 할 일은 산더미였다.”

-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 / 원정미 -

 


 

 

나의 엄마는 쉽게 고통을 잊는 듯 했다. 어제 싸우다가도 다음 날에는 정신 없이 청소를 했다. 그것도 매일 잠 자는 시간 제외하고 하루 종일 청소를 하는 것 같았다. 그것이 내 눈에는 집착처럼 보였다. 

 

그러면 어김없이 다음 날이 되거나 그 다음 날이 되면 얼굴에는 생기가 돋았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까마득히 잊은 것처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였다면 아빠와는 단 하루도 못 살 것 같은데, 엄마는 40여년간을 지긋지긋한 아빠의 굴레에서 살아 남았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아빠를 떠나지 못했던 것일까? 아님 하루 정신적인 구타를 당하더라도 술을 안 마신 날에는 평온했던, 며칠이 있어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일까?

 

 

 

 

-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 / 원정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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