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진정, 내 안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그것을 살아 보려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데미안의 첫 장을 장식하는 구절이다.
네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살아라, 네가 진정 원하는 일을 해라. 등과 같은 말을 수없이 들어 왔고 보아 왔다.
좀 유명하다는 자기계발 책의 저자들은 하나 같이 저런 말을 했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가슴이 시키는 일보다 환경과 처지에 맞춰서 부모님의 기대에 벗어나지 않는 범주에서 고만 고만하게 사는 모습들이 전부였다. 책의 저자들은 대부분은 뭔가 성과를 이룬 사람들이었고 회국에 살다 왔다거나 긴 여행을 한 덕에 새로운 문화를 접한 이들이었다. 새로운 문화가 주는 인식의 충격이란 저런 것일까?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전부라 믿었다. 오랜 기간 내가 접한 주변들이 나를 형성해 왔기 때문에 이미 만들어진 틀 안에서의 사고가 고정적으로 뿌리 박혀 있었다. 사고가 바뀌기란 힘든데 나와 사는 곳이 다른 지역을 본다는 것은 사고의 틀을 깨트리는 작용 같았다. 굳건하게 만들어 나온 자신의 알을 깨뜨리는 순간. 같은 사람 다른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다른 세상이 열린 사람들이 책을 쓰게 되면 '가슴이 시키는 일, 원하는 일을 하라'고 한결 같이 말했다. 나도 그렇게 살아야지. 가슴이 시키는 일이 무얼까를 고민해봤지만 현실은 고민의 여유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내성적인 성격에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무척이나 힘들어 했고 주변의 시선과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혼자 꼽씹으며 고민하느라 일을 하는 것 이상으로 사람이 힘들었다.
그러나 사회생활이란 건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보다 사람과의 관계 해결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다. 사람 자체가 어려웠던 난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고 회사를 자발적으로 나오거나 짤리거나 둘 중의 하나를 반복했다. 회사를 오래 다니지도 못했다. 참는 법을 몰랐고 유일한 해결책은 현장에서 사라지는 것이었다. 현장에서 사라지면 일도 멀어지고 사람과도 멀어 졌다. 또다시 혼자로 고립되기 일쑤였는데 이게 편했다. 그러나 고향이 아닌 타지에서 생활하는데는 적더라도 최소한의 생활비는 필수였고 겨우 생활비 정도의 돈만 벌었다. 그 이상을 버는 일은 내겐 버거운 일이었다.
한달 생활 겨우할 정도의 돈으로는 '가슴이 시키는 일'을 찾을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다.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은 서울에 좋은 학교를 나왔으니 내심 기대가 가득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서울 4년제 대학을 뒷바라지 해주려 꽤나 많은 고생을 하셨을 터다. 그러나 난 그 기대를 충족시켜 드릴 수 없었다. 능력도 부족했고 의욕도 없었다. 사람 관계를 힘들어 해서 지금 생각해보면 대인 기피증까지 있었던 것 같다. 말이 서울 살이지 거의 거지 같이 살았던 것도 같다.
대학을 같이 졸업한 또래들은 하나 둘 씩 좋은 회사에 취직했다. 난 일찍이 엉망인 학점이 나온 것을 보고 노력해도 학점이 좋아질 수 없다는 한계를 느낀뒤 공부를 포기해버렸다. 아무런 남은 것 없이 졸업만 했다. 그래서 졸업장만 남았다. 취직을 못했으니 아무데도 쓸모가 없었다. 능력이 저 바닥인데 졸업장 하나로 들이밀려니 취업의 벽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졸업장이 나를 대변해 주지 못했다. 아니 내가 가진 능력에 비해 졸업장이 턱 없이 좋은 거였다.
그렇게 내 능력이 가려진 졸업장으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 갔다. 한국 사회는 학벌만으로도 개인의 능력을 믿어 주는 사회였다. 학벌만 보고 나를 뽑아 준 사람들의 기대치에 맞추려 발버둥을 치다 시피 노력을 했다. 그러다 몸에 이상이 생기기도 했다.
사람들의 기대치와 시선에 맞추려는 삶이 나를 옥죄었다. 눈치를 많이 보고 타인의 평가에 예민한 나로서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한 그들의 기대치에 맞추는 수동적인 삶을 피할 방법은 없어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당시의 삶이 수동적인 삶이었다라른 깨달았다는 점이었다. 남들이 해주었으면 하는 직업과 행동과 활동들이 마치 내가 원해서 선택한 것처럼 착각하고 사는 시간들이 얼마나 많이 길어 졌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알았다고 해서 이미 타인의 시선에 파묻혀 버린 나 자신의 모습을 단번에 바꾸는 건 쉽지 않았다. 타인의 시선에 맞춰 사는 것도 어려웠지만 그보다 그 시선에서 나와 나의 주관으로 살아 갈때 쏟아지는 비판을 견디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었다. 타인의 시선을 탈피해는 사는 것은 행여 내가 잘못 판단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기 일쑤였다. 그건 주변인 뿐만이 아니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엄마와 아빠의 시선도 같았다.
당신들이 살아 온 시대에 접하고 축적된 정보의 기준에 의하면 딸인 나의 선택은 배신이자 그야말로 낙오자의 인생이었다. 그냥 조금 내려놓고 살면은 안되는 것인가? 좀 갇혀지지 않고 살아도 되지 않을까? 결혼은 꼭 해야 할까? 작은 집에서 바람따라 구름따라 간혹 버는 돈으로 조근 조근 살아도 괜찮지 않은 것일까?
왜 어느 때고 사람이 살아가면서 당연히 밟아야할 수순이 있는 것처럼 똑같은 기준으로 내 인생에 당신의 의견으로 끼어드는 것일까? 조금 더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의 개입이겠지만 난 그것이 매우 불편했고 마음과 함께 몸도 같이 망가져 갔다.
부모들의 자식에 대한 기대치라는 건 영원히 자기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채 겁데기의 인생을 살아가야 만 하는 모든 자녀들의 불행을 담보 잡고 있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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