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금요일 뭐 재미난 게 없을 까?
집에만 틀어 박혀 재미를 찾는 일이라곤 TV 리모컨 돌리기. 지상파 방송사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연신 재미없는 프로그램만 한다고 투덜댄다.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있나? 1번 채널부터 20번까지는 기본으로 눌러 본다. 그러다 발견한 어느 한 드라마. 채널 A에서 방영하는 드라마라? 처음엔 다른 방송사에서 방영한 드라마를 재방송해주는 줄 알았다. 영화 같기도 하고 이게 뭔가 싶을정도로 드라마는 영화같으면서도 잔잔하게 깊은 진동으로 다가왔다.
박하선이 여자주인공 손지은 역할을 맡았다. 마트에서 기간제로 일하는 알바생. 개념 없는 손님들에게 치이고 몇 년째 진부한 결혼생활에 남편한테 치이는 그야말로 멍청한 여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사회복지과 계장인 진창국이 그녀의 남편이다. 공무원인 남편까지 뒀는데 왜 마트에서 알바까지 하며 돈을 벌어야 하는 거지? 물론 요즘 혼자 벌어서 애까지 키우려면 버겁다는 소릴 듣긴 했다. 게다가 공무원이면 월급 뻔하지 않은가? 그래도 부부 둘 다 공무원이면 그나마 형편이 좀 나은 편이다. 혼자 벌이를 하다보니 아내 손지은도 생계에 보태려는지 마트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다. 마트 알바 세계도 만만치 않다. 그곳도 계급의 세계. 알바생들의 맡 언니의 비위를 맞춰 주는 것도 만만치 않다. 계급의 서러움은 고위직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관리, 생산, 알바직에서 계급간의 알력 기 싸움도 상당하다.
사회에서 인정 받지 못하는 직분에 있는 사람들의 갑질은 그들 만의 바운더리 안에서 일어 난다. 먼저 들어와 일한 경력이 그들에게는 갑질하기 쉬운 권력이 된다. 인정의 욕구를 나보다 더 직분상 더 약자로부터 푼다. 인정 욕구 풀이 대상이 된 손지은은 집에 가서도 남편에게 찬밥 신세다.
남편 진창국은 아이를 원하는 아내의 의견을 무시한 채 기르던 앵무새만 자식 대하듯 애지중지 키운다. 아내 손지은이가 아파도 관심이 없다. 앵무새가 핼쓱해졌다며 챙겨온 약을 아픈 지은이를 지나치며 앵무새에게만 갖다 바친다. 하여튼 남자 고시 뒷바라지 해주다가 시험 합격하고 배신 당한 여자 어디 한둘이 보는가. 고시까진 아니고 사회복지과로 공시 뒷바라지 해준 지은과 결혼은 했지만 배신 당하지 않고 얻은 대가가 고작 이거라니. 누구 좋으라고 여우 기색 하나 없이 지고 지순한 성격으로 모든걸 체념하고 사는가?
"벌써 3년, 그동안 우리 부부는 잠자리를 갖지 않았습니다. 그런다고 딱히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니까요."
드라마 중 손지은 나래이션 부분,
남편은 지은을 아예 대 놓고 '엄마'라고 부른다. 남편이 아내를 엄마라고 부를 때는 엄마로서 자식 챙기듯이 알뜰 살뜻이 챙겨주기 때문에 경우도 있지만 여자로서의 의미를 퇴색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드라마에서는 아이가 없는 지은을 배려하기 위해 남편이 부르는 호칭이라고 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끝까지 남편의 의도를 배려하고 싶은 지은의 해석밖에는 되지 않는다. 회사 생활하고 바깥 활동하는데 집안에서 서포트를 해주는 역할이 필요할 뿐이다. 필요로서 대하는 것지 사랑을 해야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적어도 아내를 엄마로서 대하는 지점까지는 그렇다.
손지은의 불행은 일부는 남편 탓이며 일부는 자신의 탓이다. 자신이 뒷 순위로 밀려나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던 자신의 탓이 있다. 왜 저렇게 찌질하게 화 한번 내지 않고 자기 목소리 한 번 못내고 가장 사랑 받아야 할 사람한테 짓눌리고 주변인에게 치이는 삶을 살고 있느냔 말이다. 보고 있는 내내 여주인공 손지은을 욕하며 화가 났다.
아무리 가진게 없고 보잘 것 없어도 저렇게 바보 같이 살아선 안 된다. 성격이 더럽다는 욕을 설사 듣더라도 나라는 존재를 그렇게 가치 없이 하찮게 대해서는 안 된다고 소리쳐야 한다. 혼자 참고 침묵하는 건 자신 또한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바보 같은 짓이다.
그런 바보에게 한 남자가 잔잔한 음악의 선율처럼 나타난다. 대안학교 생물교사 윤정우. 우연한 등장 우연한 마주침. 누군가의 연결 고리도 없이 연관 관계도 없이 손지은의 인생에 나타난 한 남자. 아? 저 남자가 앞으로 손지은과 사랑에 빠질 남자구나! 저 바보 같은 여자 인생에 빨리 침범해 주었으면 했다. 어쩌면 분리 수거도 안 된 쓰레기 같은 인생에 아직 재생할 시간이 남았다며 삶의 구렁텅이 속에서 건져줄 그 누군가의 개입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녀의 호감은 순간의 마주침에서도 어설프게나마 느껴진다. 한 번도 얘기를 해 본적도 없고 단 한 번도 마주친적이 없어도 처음 한 순간의 마주침에서 이미 설레임과 호감은 둘 사이이 공간에서 이상 기류를 타고 서로의 감정 안으로 흘러간다. 손지은과 윤정우가 마주쳤을 때 느꼈다. 이상한 감정의 기류. 지금은 어색해도 앞으로 사랑하게 될 것만 같은 이상 기류. 그러나 내 안에 철벽처럼 자리잡고 있는 규율때문에 선뜻 다가가지 못한다.
불륜. 누구나 쉽게 하지만 누구나 허락하지 않는 금기 같은 규율이 손지은, 아니 거의 대부분의 여성들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반은 여자고 반은 남자인 세상에서 결혼은 한 인간이 결혼을 하지 않은 인간에게 호감을 느끼는 일은 흔하디 흔한 일이다. 단지 욕망을 절대할 뿐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숨길뿐 말로 표현하지 않은 남녀 사이의 감정 흐름은 공기처럼 우리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러다 선을 넘을 때 사건은 발생한다. 흔히 말하는 불륜이 일어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에게는 반항심이라는게 내재되어 있다. 반항심이라는 것 자체가 타인의 의도대로 떠밀려 살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나 자산의 주관대로 살겠노라는 다짐의 강한 표출이다. 사회가 나에게 심어준 규율에 대한 반항심은 금기에 대한 욕망으로도 나타난다. 성인이 되어 사회의 규율대로 결혼한 이들에게 자주 표출되는 욕망은 불륜이다. 모든 것들이 다 허락된 상황에서 나의 선택은 재미가 없다. 어짜피 선택해도 안해도 그만이다. 이미 허락된 것이기 때문에 가지고자 하는데 노력도 필요가 없다. 인간은 어렵게 얻은 것에 대해 더 강하게 집착하며 가질 수 없는 것에 더 큰 욕망을 불어 일으킨다.
그래서 결혼은 연인관계의 끝을 알리는 시작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내 옆에 두겠다는 안정감이 얼마나 이성관계를 진부하게 만드는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메말라진 결혼 생활에서 찾아 온 한 남자. 지은에게 정우는 그런 사람이다.
그나저나 이건 좀 오번데. 아무리 우연한 사건에 연루되었다곤 하지만 여자의 신발 굽이 부러졌다고 마트에서 신발을 사온다고? 그래 백번 양보해서 신고 갈 신발이 당장 없으니까 사왔다고 치자. 그렇다고 신발을 신겨 주는 건 좀 오버 아닌가? 아마. 윤정우도 손지은을 마트에서 처음 볼 때 호감이 있었던게 아닐까? 이성에 대한 호감은 오랜 기간 만나보면서 생기기도 하지만 첫 대면에 거의 사실상 호감의 유무는 드러난다. 그러지 않고서야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의 신발 끈을 묶어주냔 말이지!
사랑은.. 감정은... 오래 같이 있다고 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찰나일지라도 감정은 전해진다. 마음의 동요는 몇 초간 사이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좀 전 일터에서 잠시 마주쳤던 느낌 좋은 남자. 그 남자를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또 마주치게 되었다? 이건 거의 사랑의 폭풍우가 몰아 닥칠 것을 예고하는 것이다. 나비의 날갯짓처럼 우연한 사건의 연속은 앞으로 큰 사건을 예견하는 전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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