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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고려 왕건의 후삼국 통일! 고창전투에서 호족의 활약! 권행, 김선평, 장정필

by 아트온다 2021. 2. 2.

고려의 후삼국 통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신라 말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습니다. 

왕들의 잇단 실정과 진골 귀족들의 왕위쟁탈전,

연이은 반란까지 그로 인해 백성의 삶은

피폐해져 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쪽에선 견훤이, 북쪽에선 궁예가

등장했습니다. 

 

 

견훤은 옛 백제지역에 팽배한 반신라감정을

이용해 민심을 수습했고 결국 후백제(900)를 

건국합니다. 

 

궁예 역시 고구려를 대신해 신라에 복수할 것을

선언하고 후고구려(901)을 건국합니다. 

 

이로써 신라, 후백제, 후고구려라는 

후삼국시대가 시작됐습니다. 

 

이후 송악의 호족출신인 왕건은 부하들의 

추대를 받아 궁예를 몰아내고 왕이 됐고

국호를 고려로 바꿉니다. 

 

 

927년 견훤은 경주를 침공해 경애왕을 죽이고

경순왕을 새로운 왕으로 세웠습니다. 

 

왕건은 위기에 처한 신라를 구원하러 갔고 

공산(지금의 대구 팔공산) 일대에서 

견훤과 싸웠지만 대패를 당합니다. 

 

왕건은 극적으로 탈출했지만 김락과 신숭겸이라는

충신을 잃었습니다. 

 

또한 후백제는 공산전투를 통해 경상도 지역에

대한 군사적 우세권을 장악하고 정국의 

주도권도 잡습니다. 

 

 

왕건이 여덟 장군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했다고 

해서 '공산'을 '팔공산'으로 고쳐 부르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고려가 반격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고창전투였습니다. 

 

고려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주변 호족들의 지지 덕분이었습니다. 

 

당시 이 지역 호족인

김선평, 권행, 장길 등이 왕건을 지지했고 

 

결국 후백제를 격퇴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습니다. 

 

이후 후백제 측의 30여 군현이 고려에 항복했고 

신라의 경순왕도 고려로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고려는 이 전투로 전쟁의 주도권을 

다시 잡았습니다. 

 

왕건은 고창전투에서 승리하고 나서 비로소

동쪽이 편안해졌다

라는 뜻에서 고창을 안동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이처럼 현재 지역명칭 중 일부는

후삼국 시기에서 그 유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후 후백제는 내분에 휩싸이게 됩니다. 

 

935년 3월 신검은 견훤을 금산서에 유폐시키고

후백제의 왕으로 즉위합니다. 

 

하지만 3개월 뒤 견훤은 탈출해 고려로 망명했고

같은 해 신라의 경순왕도 고려에 항복합니다. 

 

 

936년 고려와 후백제의 마지막 전투가 

일선군(지금의 구미시 선산읍)의 일리천에서 

벌어졌습니다. 

 

고려는 대규모 병력을 동시에 거세게 

몰아부쳤습니다. 

 

견훤마저 고려로 왔고, 호족과 민심도 

고려편이었습니다.

 

결국 고려는 대승을 거두고 후백제의 항복을

받아냅니다. 

 

마침내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했고 

최후의 승자가 됐습니다. 

 

후 삼국시대는 호족들이 중앙에서 

독립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즉, 후삼국 사이의 경쟁은 호족과 민심의 지지를

더 많이 받는 쪽이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역사학자들은 이 전투가

통일의 초석이 됐다고 평가합니다. 

 

왕건은 이 전투로 충신도 잃었고 

정국의 주도권도 뺏겼습니다. 

 

하지만 호족과 신라인들에게 

민심을 얻었습니다. 

 

이후 고창전투에서 호족의 도움으로 승리했고

주도권도 되찾았습니다. 왕건이 눈앞에 이익만

봤다면 구원하러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관계를 하다보면 눈앞의 손해가 꼭 손해만이

아니며, 눈앞의 이익이 꼭 이익만이 아니라는 것을

한 번쯤 경험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왕건은 이 전투를 통해 많은 걸 잃었지만

결국 통일을 얻었고 최후가 승자가 됩니다. 

 

신라의 태자는 고려에 대해서도 싸울 것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경순왕은 신라가 힘이 없다고 

판단했고 결국 항복했습니다. 

 

경순왕이 자신의 생존을 위한 것인지

백성의 안위를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게

지도자의 중요한 책무 중 하나라는 점을 

생각하면 결과론이지만 경순왕을 신라 천년

왕조의 문을 닫은 무능한 망국의 군주라고 

저평가 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참조 : 모두의 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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