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소장으로 수도경비 사령관,
오늘날의 수도방위 사령관과 국회의원을
역임한 장태완 장군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먼저 장태완 장군은 경북 출신으로
대구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이 발발하자
육군종합학교에 지원하여 11기로 임관했습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갑종(육군의 단기 교육 장교 양성 제도)으로 분류되어 장교로 임관하였습니다.
장태완 장군은 6.25 참전용사로 장교로써 살아남아 계속 군에 남아 진급했고
준장의 계급으로 수도경비 사령부 참모장에 복무하게 되는데요.
이때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정규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라고
단기 장교 양성 과정인 갑종 출신 장태완
장군을 깔보고 반항하던 김상구 방공포 대대장을
영창으로 보낸 일화가 있습니다.
김상구 대대장은 당시 중령 계급으로
육사 15기이며 하나회의 중요 멤버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대대장 김상구 중령은
수도경비 사령부 방공 진지 공사 현장에
장태완 장군이 태만한 공사에 대해 화가 나
"이렇게 모자란 놈이 어떻게 대한민국 장교가
된건가? 라고 하자 화가 나
"저는 4년제 육사에서 배울 만큼 배우고 임관한
장교입니다. 장교의 명예를 짓밟는 그 말을
당장 취소하십시오!"
라고 말했고 한참 후배 장교가 감히 상급부대
장군에게 반항하자 더 쏘아붙였고 이에
"내가 장군님보다 군사학을 더 배우고
임관했습니다." 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새파란 중령이 직속 상급부대 상관인 그것도
별을 단 장군에게 저런 발언을 했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상식적으로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 일로 인해 울분을 참지 못한 장태완 장군은
당시 부대 사령관이었던 진종채 수도경비
사령관에게 이 일을 낱낱이 보고하고 징계를
줘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진종채 사령관은 영남권 군 후배인
김상구 중령을 보호하기 위해 장태완 장군을
달랬다고 합니다.
장태완 장군은 강경하게
"저의 군복을 벗기시든지 아니면 김상구를
구속시키던지 택일하십시오"라고 말했고
결국 김상구 중령은 영창에 들어갔다가 전역
조치 당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일은 하나회 장교들이 장태완 장군을 경계하고
싫어하게 되는 사건이 되었죠.
시간이 흘러 대한민국 현대사의 최고의 사건이라
할 수 있는 10.26사건이 일어나고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 정보부장에게 암살
당하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비상시국에 국가는 계엄 체제로 들어가게 되고
군과 계엄 체제의 최고 중요 인물인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총장이
최초로 갑종 출신인 장태완 장군을 수도경비
사령관에 임명하게 됩니다.
장태완 장군이 육사 출신이 아닌 비육사
출신으로서 군내 최고 중요 보직 중 하나인 수경
사령관에 임명되었다는 것,
이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수고경비 사령부는 일선 1.3사령부 소속이 아니라
육군본부 소속으로 수도 서울을 지키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있으며 서울 내에서 탱크라던가
헌병, 특공, 방공 병력을 즉시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지휘관이며 노태우 같은 대통령이 나오기도
했고 김태영, 한민구 같은 국방장관과
많은 4성 진급자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장태완 장군 외에는 이후 비육사 출신
수도경비 사령관 현 수도방위 사령관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고 현재까지 오로지
육사 출신만이 도맡아 왔던 보직이 바로
수도경비 사령관(현 수도방위 사령관)입니다.
이 보직은 그 만큼 그 책임과 임무가 막중하며
군내 최고의 요직이라 할 수 있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으로 사회는
혼란에 빠졌고 계엄 상황에서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의 수사 책임자가 된 합동수사본부장 겸
보완 사령관인 "전두환"은
정승화 참모총장과는 또 다른 권력의 실세가 되었고
이에 평소 전두환과 "하나회"를 껄끄럽게 생각하던
정승화 참모총장과 마찰이 생기자
전두환을 필두로 한 "하나회"의 군내 주요
지휘관들은 자신들의 부대를 이탈하고
서울 30경비단에 모여 정승화 참모총장을 조사의
명분으로 납치하여 이른바 12.12군사반란이
시작됩니다.
당시 계엄하의 책임자인 계엄사령관을
연행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절차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유일한 권한자인 대통령의 허락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일단 총장을 강제로 납치하여
감금하게 됩니다.
전두환과 하나회의 치밀한 계략에 장태완
장군과 당시 특전 사령관을 맡고 있던 정병주
사령관은 황급히 부대로 복귀하여 반란군을
제압하려 하지만
이미 정승화 참모총장은 납치되었고 키포인트를
쥐고 있었던 장태완 장군의 수도경비 사령부는
주축이라 할 수 있는 휘하 부대 30경비단과
33경비단이 반란에 앞장서있는 상황이었고
정병주 사령관의 특수전사령부 또한
휘하 1,3,5 공수 여단장이 하나회의 멤버로
이미 반란에 선두에 나선 상태였습니다.
이와 같이 가장 중요한 두 사령부가
이미 장태완 장군과 정병주 사령관이 장악하지
못한 상태였고 전두환은 사태를 빠르게 제압하기
위해 박희도 1공수 여단장에게 육본과 국방부를
장악할 것을 명령합니다.
특수전부대 또는 공수부대는 서울 근교에 있던 부대로 정예 특수전 보병들이며
이와 같은 국가 급변사태에 가장 빠르고 손쉽게투입할 수 있는 보병들로 사실 아군끼리 도심에서중화기나 병기를 간단히 사용할 수 없는단기 내전의 특성상 특수전 사령부의 공수부대들은가장 중요한 부대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특전 사령부의 1.3.5 공수부대는 이미하나회에 장악되어 있었죠.
장태완 장군은 즉각 경비 병력을 보내 정승화 총장을 구하려 하였고 30경비단으로 전차중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가장 빠르게 서울로 진입할 수 있는 비육사 출신 여단장이 장악하고 있는 9공수를급히 보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죠.
12.12군사 반란에서 가장 중요한 부대는사실 특수전사령부 예하 공수 부대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런 역사에서 볼 수 있듯 특전 사령관이나공수여단장은 국가의 급변사태에 가장 중요한지휘관들이었습니다.
특수전 사령관은 그래도 한 번이라도 타 출신이역임한 수도방위 사령관과는 다르게
문재인 정권전까지 모든 사령관이 육사 출신만이 역임했습니다.
육사 출신이 아니면 받을 수 없는 이 보직을문재인 정권에서 처음으로 비육사 출신 특전사령관이 임명되게 되죠.
장태완 장군은 9공수에 이어 전방의 병력까지투입해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청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위협을 느낀 반란군 측과 대화를 하기도 했는데
이때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배우 김기현 씨가
열연한 일명 "장포스"를 탄생시킨 그
명대사가 나옵니다.
실제로 12.12당시의 육성이 공개되었는데
저 대사 그대로는 아니지만 머리통을
날려버리겠다고 한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후 1공수의 출동을 알고 위협을 느낀 육본
지휘부는 장태완 장군의 수도경비 사령부로
지휘소를 옮겨 반란군을 상대하려 했고
육본 지휘부는 유일하게 자신들의 통제하에
있었던 9공수여단을 출동 시켜 반란군을
막으려 했지만 바보 같은 육본 지휘부는
9공수여단을 출동시키지 않으면 1공수도
출동하지 않겠다는 반란군의
기만전술을 믿고 유일한 기회를 날리게 됩니다.
결국 1공수여단은 지휘부가 떠난 육본과
별다른 병력이 없는 국방부를 장악하게 되고
숨어 있던 노재현 국방장관의 신병을
확보하게 됩니다.
30경비단에 남아있떤 3공수 여단장 최세창은
부대로 복귀하여 상관인 전병주 사령관을
병력을 보내 강제로 체포합니다.
분명한 반란이며 하극상이었죠.
그 와중 전병주 사령관은 총상을 입었고
사령관의 비서실장인 김오랑 소령이
사망합니다.
결국 육본과 국방부 특수전사령부까지
반란군에게 제압당한 상황에서 남은 것은
장태완 장군과 육본 지휘부가 있는 수도경비
사령부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딱히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죠.
수도권 주요 지휘관은 상당수가 반란군 측에
붙어 있었고 통신과 지휘체계는 전두환의
보안 사령부에게 감청을 받고 있었으며
믿었던 특수전사령부까지 무너진 마당에
별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반란군은 전방 병력까지 출동시킨 상황이었고
설상가상으로 30, 33 경비단에 이어 수도경비
사령부 내부의 헌병대장까지 반란군에 가담하여
육본 지휘부와 장태완 장군은 체포됩니다.
경국 12.12는 빠른 대처를 하지 못한 육본
지휘부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국방장관의
대활약?으로 하룻밤 사이에 정리됩니다.
장태완 장군은 끝가지 반란군에게 대항했고 빠르게 부대 투입을 요청하고 나름대로의 대처를 하였으나 역사의 물결은 전두환과"하나회"의 손을 들어주게 됩니다.
사람은 역사에서 배웁니다.
우리는 12.12군사 반란을 통해 아무리 유능하고 좋은 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이라하여도 한 출신이 조직과 집단의 권력을 장악하게되면 조직의 체계와 질서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역사가 퇴보하는 것을 모두 보았습니다.
수도방위 사령관은 장태완 장군 뒤로 26대에 걸쳐 육사 출신만이 임명되었고
특수전 사령관은 27대에 걸쳐 육사 출신만이
임명되다가 이제 겨우 한 명 비육사 출신이 역임한
바 있습니다.
육사는 물론 군내 최고의 엘리트 집단으로
가장 많은 교육과 국비로 양성되는
장교들이지만 앞선 선배들의 범죄행위를 보고
군 본연의 가치와 의무를 후배들이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태완 장군은 육사가 아니지만
6.25참전용사이며 비육사 출신으로 군내 핵심
지휘관에 올랐고 전두환과 반란군들 앞에서도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참군인의 면모를 보여준
이 시대가 기억해야 할 진정한 군인입니다.
그는 비록 반란을 막는 데는 실패했지만
군인의 본분을 지키고자 했고
끝까지 불의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이 시대의 진정한 참군인 장태완 장군님
편이었습니다.
출처 : 역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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