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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역사상 최악의 폭군, 연산군의 모든 것

by 아트온다 2020. 12. 17.

극악무도한 패륜을 저지르고

색에 미쳐 수많은 여자를 강간했던

조선 역사상 최악의 폭군으로 기억되는 왕.

 

연산군

 

성종(조선9대 왕)과 폐비 윤씨 사이에서 출생한 

아들이 1494년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먼저 연산군은 어려서 굉장히 불우한 환경을 

겪게 됩니다. 바로 어머니 폐비 윤씨가 사약을 받고 

죽게된 것이죠. 

 

 

사실 아버지 성종은 여자를 밝히기로 유명했습니다.

 

또한 폐비 윤씨는 질투심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었는데

그렇기에 성종의 후궁들을 싫어하고 모함하곤 했죠

 

결정적으로 어느 날 성종이 첩의 방을 들어가는 것에

대해 질투에 이성을 잃게 되죠. 

 

그렇게 실랑이를 하던 와중에 성종의 얼굴에 

손톱으로 상처를 입히게 됩니다. 

 

 

이는 당시 조선의 유교사상관점으로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행동이었습니다. 

 

물론 성종도 분노하였지만 그녀의 시어머니인

"인수대비"가 폭발하고 만 것이죠. 

 

 

결국 칠거지악을 명분으로 

(칠거지악 : 아내를 내쫓는 이유가 되는 일곱가지

사항으로 조선시대 유교사상에서 나온 제도)

 

1. 말이 많으면 쫓아낸다. 

2. 순종하지 않으면 쫓아낸다.

3. 질투하면 쫓아낸다. 

 

이 세가지에 의해 쫓겨나게 되고,

2년 뒤 사약을 받고 죽게됩니다. 

 

 

그리고 성종은 이 사건을 백년동안 입에도 

담지 말라고 신하들에게 신신당부를 했죠. 

 

당시 어렸던 연산군은 이 사실을 모른 채 

성인이 되는데 하지만 시간이 지나 재위 10년 되는

해에 이 모든 전말을 알게 된 연산군.

 

이때부터 비극이 시작됩니다. 

 

먼저 연산군은 어머니의 죽음을 외할머니 

"인수대비"와 계모들이였던 귀인 정씨와 엄씨의 

탓으로 돌려 복수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귀인 정씨와 엄씨를 끌어내 

잔인한 고문을 하게 되는데 여인 둘에게 푸대를 

씌우고는 그들의 소생, 즉 연산군 자신의 이복동생인

안양군과 봉안군을 불러 푸대 하나씩을 맡아

몽둥이로 두들겨 패게 했습니다. 

 

이는 곧 자식으로 하여금 어미를 때려 죽이도록 

만든 것이죠. 그리고 그 시체를 갈기갈기 찢어 

산야에 버렸습니다. 

 

 

이는 조선시대의 윤리로서는 아버지와 결혼한

계모에 대해서도 친모와 동일한 기준으로 대한 것을

보면 존속살해에 해당하는 패륜을 벌인 것이였죠.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인수대비를 머리로 들이 받아

실신시킵니다. 그리고 한달 간 병상에 누워있다

화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손자에 의해 

목숨을 빼앗긴 셈이죠. 

 

 

그리고 이 비극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조정엔 사림파, 훈구파로 나뉘어 있었는데

자신의 측근 세력만 제외하고 다 숙청하게 되고,

그렇게 강력한 왕권을 갖게 됩니다. 

 

이 사건이 바로 갑자사화

 

 

이때부터 연산군은 미치광이 폭군이 되어버리죠. 

 

연산군은 색에 미쳐있던 왕으로도 기억됩니다. 

채홍사라는 관리를 두고 전국의 미녀를 강제로 

징발해 그 수가 1만이 넘었다고 합니다. 

 

이 중에 가장 예쁘고 노래를 잘하는 자들을 

뽑아 궁으로 오게하여 "흥청"이라 이름을 붙였고,

그 수만 2,000명이 넘는다 전해집니다. 

 

나랏일은 신경도 안 쓰고 흥청들과 방탕한 생활을

하기 바빴죠. 백성들은 이를 보고 흥청은 곧 

망청이다 해서 오늘날 흥청망청의 어원이 되기도

합니다. 

 

 

흥청에게는 기본적으로 집이 하사되며 

그 가족들에게는 노역이나 납세의 의무가 

면제되었습니다. 

 

여러모로 나라꼴이 말이 아니었겠죠. 

 

여기서 등장하는 연산군의 마음을 훔친 

최고의 흥청 "장녹수"

 

 

장녹수는 연산군을 유일하게 애기처럼 다룬 

인물이었고 연산군 또한 무척이나 총애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연산군의 음탕한 생활과 악행을 더욱 

부추기는 역할을 했던 폭정의 핵심인물이였기에

결국 나중엔 장녹수는 길거리에서 돌덩이로 맞아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죠. 

 

놀랍게도 연산군이 연회 공간으로 사용한 곳은

세종이 중요시한 집현전과 세조가 증건한 

원각사였습니다. 

 

 

성균관 학생들을 내쫓아 그곳을 놀이터로 만들기도

했죠. 또한, 민가를 쓸어버리고 본인의 사냥터를 

만들기도 하였는데 이에 백성들은 불만이 극심해져 

연산군의 악행을 고발하는 투서들이 나돌게 

됩니다. 

 

이를 알게 된 연산군은 훈민정음 교습을 중단시키고

한글사용 금지법까지 걸어버리는 미친짓을 하죠. 

 

더욱 충격적인건, 연산군일기에 이렇게 전해집니다. 

 

"왕의 음탕이 날로 심하여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의 아내인지 비밀히 알아보게 하여 

외워뒀다가 밤에 강제로 간음하여 낮에도 그랬다."

 

기생들에 만족하지 못하고 마음에 들면 

신하들의 아내건 누구건 상관없이 강간을 한 것이죠.

 

 

실제로 실록에는 연산군에게 아내를 바친 

신하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인 누이들과 근친상간까지 하는 것은 물론

해선 안될 짓까지 하게 되는데,

 

연산군의 일기에 따르면, 

쉰 살이 넘는 큰 어머니를 강간까지 했다고 

전해집니다. 

 

심지어 아이까지 생겨 자살을 했다는 소문이 

무성했죠. 

 

물론 이런 미치고 날 뛰는 연산군을 도저히 눈뜨고 

못 지켜본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내시 "김처선"

 

1505년 연산군은 궁중에서 음란한 춤인 "처용무"

를 추며 방탕하게 놀고 있었는데,

이때 김처선이 목숨을 걸고 직언을 쏟아내게

됩니다. 

 

 

"이 늙은 신은 네 분의 임금을 섬겨왔으나 

이토록 음란한 왕도 없었습니다."

 

이에 연산군은 화를 이기지 못해 화살을 쏘아 

그의 옆구리를 맞췄죠. 그러나 그는 다시 말했습니다.

 

"대신들도 죽음을 서슴치 않는데 이 늙은 환관 같은

거야 죽음이 아깝겠소마는 임금께서 오래 국왕으로

있지 못할 것이 원통할 뿐입니다."

 

연산군은 화살을 다시 쏜 다음 그의 다리를 

잘라버립니다. 그리곤 일어나 걸어보라고 명령하자

 

"전하께서도 다리를 자르면 걸으실 수 있겠습니까?"

라고 반문하였죠. 

 

 

이에 그 혀를 자르고 몸을 베어 그 시체는

호랑이에게 먹였습니다. 

 

죽어가면서까지 자신에게 직언을 퍼부었던

김처선을 극도로 싫어하게 된 연산군은

밑도 끝도 없는 보복을 하였습니다. 

 

7족 관계의 친족들까지 벌을 주고 

김처선 부모의 묘까지 헐어버리죠. 

 

전국의 김처선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에게

개명을 하게 합니다. 

 

심지어 김처선의 이름에 들어갔던 "처"자의

사용을 금해 그토록 좋아하던 처용무의 이름까지

풍두무로 바꾸었죠. 

 

 

그리고 결국 1년 후인 1506년 9월 

연산군의 폭정을 참지 못해 조선왕조 최초로 

신하들이 왕을 몰아내는 "중종반정"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렇게 연산군은 폐왕이 되어 유배를 가게 되죠. 

 

사실 갑자사화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지금의 폭군의 이미지와는 멀었다고 합니다. 

 

초기에는 정치에 의욕도 있고 왕으로서 인정을 

받고 있었죠. 빈민을 돕는데 힘썼고 

국조보감 등 여러 서적을 완성시켰으며 국방력을 

키우는데 주력했습니다. 

 

이랬떤 그가 미치광이 폭군으로 전락한게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죠. 

 

 

일각에선 대부분이 야사에 나오는 이야기도 많고

기록엔 과장된 부분이 많다고 보는 경향도 

있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편이기 때문이죠. 

 

임금의 자리에 있었던 12년 동안 말도 안되는

패륜을 저지르고 누구건 가릴 것 없이 겁탈을 

범하고 왕권 강화를 위해 두 번의 사화를 일으켜

포악한 정치를 일삼던 연산군

 

유배간지 두 달 만에 병에 걸려 죽게 됩니다. 

 

실록에 따르면 죽기 전 유언으로 이 한마디를

남겼다고 합니다. 

 

"중전이 보고 싶다."

 

 

출처 : 아그래-역사이야기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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