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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10분만에 순삭하는 제2차 세계 대전에 대하여

by 아트온다 2020. 12. 14.

1918년 11월 11일

 

1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전쟁에서 패배한 독일은

수많은 식민지를 모두 잃고, 엄청난 배상금을

끌어 안게 됩니다. 

 

그리고 배상금을 갚기 위해 돈을 무분별하게 
찍어 내기 시작하고 국민들은 이러한 것이 

자신들에게 너무 불공정하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지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 인물이 홀연히 등장하니 

그가 바로 히틀러였습니다. 

 

 

히틀러는 독일인의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시켜주는

웅변으로 점점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패배감에 찌들어 있던 독일인들에게

자부심을 고취시켜 주며 결국 수상에 임명됩니다. 

 

독재 체제를 이룬 히틀러는 배상금은 물론

베르사유 조약을 위반하고 독일이 중심이 되어

유럽을 재편해야 한다며 군대를 재무장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독일은 옆에 붙어있는 폴란드가 

제 1차 세계대전때 점령한 독일의 영토 일부분을 

다시 되찾고 싶었고 이후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후 구영토의 반환을 폴란드에 여러 차례

요구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영유권을 두고 외교적 분쟁을 빚은 끝에

결국 군사적인 해결책 외에는 히틀러에게

주어진 선택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군사적인 해결책도 그리 만만하게 

아니었는데 당시 프랑스와 영국은

폴란드와 상호 방위조약으로 결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독일의 폴란드 침공은 당연히 영국과 

프랑스의 참전을 불러오게 되고 

 

독일은 1차세계대전때 처럼

양측에서 숨통을 조여오는 것을 막아야하는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양면전선은 절대적으로 피해야했던 독일은

새로운 방안을 찾기 시작했고 

폴란드의 우측에 위치한 소련과 비밀협상을 벌여

독일과 소련은 모스크바에서 서로 침략하지 

않겠다는 불가침조약을 맺게 됩니다. 

 

그리고 폴란드를 점령하면 동서로 나누어

폴란드 영토의 반은 독일이 갖고 

나머지 반은 소련이 접수한다는 데 합의했죠

 

1939년 9월 1일 새벽,

독일은 선전 포고도 없이 폴란드를 침공하였으며

소련은 독일과 합의에 따라 폴란드를 침공합니다.

 

그리고 당시 폴란드와 동맹관계에 있던 영국과 

프랑스도 독일에 선전 포고를 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은 시작됩니다. 

 

 

독일군은 소련군의 도움과 함께 신속한 기동력과

기습으로 폴란드를 전쟁초기에 끝내기 위한 

작전을 펼치는데 이 전략은 독일이 구 프로이센

시절부터 계속해서 펼쳤던 독일만의 

전력이었습니다. 

 

독일과 소련은 불과 3주만에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를 함락합니다. 

 

폴란드는 수적으로도 열세였으며

최신예 탱크로 무장한 독일군의 부대는 너무 

강력했습니다. 

 

그리고 폴란드의 동맹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공격할 부대를 제대로 모을 시간도 없이 

폴란드가 항복을 선언 해버렸으며

 

사실, 이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폴란드가 점령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극적인 작전에 머무릅니다. 

 


 

"우리의 가장 위험한 적은 영국이다.

그러나 그들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프랑스를 먼저 꺾어야만 한다."

 

- 독일, 아돌프 히틀러 -

 

폴란드 점령이 끝나고 

곧바로 영국과 프랑스에 맞선 작전을 세운 독일은

먼저 가까이 있는 프랑스에 대한 대공격을

준비했는데 10년 전부터 프랑스는 제 1차 

세계대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방어가 최선의 

전략이라고 인식했고 '앙드레 마지노'의 주장에

따라 약 160억 프랑의 비용을 들여 국경을 

방어하는 엄청난 요새를 만들었습니다. 

 

 

이 요새는 독립적으로 작전을 펼칠 수 있는

수 백개의 방어시설과 벙커가 촘촘히 설치되었는데

750km의 길이에 어마어마한 건설비 때문에

많은 부담이 가는 계획이었지만

 

지난 1차 세계대전에서 

한 세대가 사라지다시피 한 인명피해를 겪었던

프랑스에서 그다지 반대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최종 요새는 마지노 장군의 이름을 

따 '마지노 선'이라고 부르는데

현대에 사용되는 '마지노 선'이라는 표현이

여기에서 시작된 것이죠. 

 

 

프랑스 침공을 준비중인 독일은 

도저히 이 강력한 요새를 정면으로 뚫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 그 대신 이 요새를 

우회해서 빈공간으로 돌파하겠다는 전략을 

세우는데 방법은 이러했습니다. 

 

프랑스의 아르덴 숲 부근은 우거진 나무가 많아

독일의 탱크와 같은 기갑부대가 침공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프랑스는 이곳을 독일군의 침투로로 예상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방어태세를 느슨하게 

취하고 있었습니다. 

 

정면전을 피해야했던 독일은 마지노선을 우회해

당시 중립을 선언하고 있던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를 강제로 점령하고 

 

프랑스의 아르덴 숲으로 돌파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예전부터 독일과 상호 협력 조약을 맺고 

있었던 이탈리아는 독일을 도와 프랑스의 남부를

침공합니다. 

 

마지노 요새를 우회한 독일군은 신속하게 치고 

나갔으며 서부전선이 완전히 붕괴되어 

영국과 프랑스는 전면패배의 위기에 봉착했고

 

후퇴를 거듭해 덩케르크 해안에서 대규모 

탈출작전을 시도합니다. 

 

영국와 프랑스(연합군)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최대 규모의 해상탈출작전을 감행했고

 

독일군에게 장비와 물자를 넘기지 않고 

성공적으로 철수시킵니다. 

 

 

이렇게 독일군은 파리를 함락하고 프랑스 점령을

마치게 됩니다. 

 

프랑스를 패망시킨 독일은 프랑스의 반은

직접 지배하고 나머지 반은 프랑스의 친독일

정권을 세워 간접 지배하는 형태를 취합니다. 

 

프랑스가 정복 당하면서 독일은 곧바로 영국으로 

방향을 틀었고 영국은 독일과의 힘겨운 전쟁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됐습니다. 

 

 

영국의 해군은 예부터 아무도 넘보지 못할 만큼

강력했고 바다에서의 전쟁만큼은 피해야 했던

독일은 먼저 자신이 우세한 공중전에서 승리를

거두고자 했습니다. 

 

독일군은 영국보다 3배가 많은 전투기로 

우선 항구, 선박 시설들을 시작으로 비행장과 

산업 시설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영국(윈스턴 처칠)은 전역에 대규모 레이더 

기지를 설치하여 적의 대상물에 대한 정보를 

분석하고 독일군에 요격하였습니다. 

 

 

그렇게 독일군은 70만 병력을 영국에 상륙시키

겠다는 작전을 실제로 펼치지도 못하고 

영국은 독일군의 대규모 공세를 방어하는데

성공합니다. 

 

처음으로 패배를 맛본 히틀러는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전쟁물자 확보가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동맹이었던 소련의 풍부한 석유와 자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이 둘의 평화는 오래갈 것이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소련을 배신하기로 마음먹습니다. 

 

 

히틀러는 영국이 본토의 피해를 복구하는 동안

그리스를 점령 후 소련과 서로 침략하지 않겠다는

불가침 조약을 깨고 소련에 진격해 버립니다. 

 

1941년 6월 6일에 독일이 동맹국을 비롯한 군사

300만명을 동원해 '바르바로사'라는 

작전을 개시해 소련을 공격합니다. 

 

이 작전은 소련의 중심부로 가기 위해 

1,500km에 이르는 전선에 최대규모의 침공군을 

집결시켜 3방면을 나누어 침투하겠다는 

작전이었습니다. 

 

불시에 침입을 받은 소련은 영국과 즉시 

군사동맹을 맺고 처음 얼마 동안 후퇴를 거듭해

모스크바까지 불과 30km를 남겨둔 상황까지 가게

됩니다. 

 

 

4년 전에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이 약 1년동안

정권을 쥐기 위해서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이나

의심되는 사람들을 전부 죽였는데

 

이 때의 대숙청 사건으로 수십만에서 

수백만의 사상자가 나왔고 

 

당시 최고 사령관들 또한 스탈린에 의해 숙청당했기

때문에 초기 독일과의 전쟁에 제대로 된 군사전력을

펼치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초반 소련군의 탱크는 

독일군의 탱크에 비해 화력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에

독일군이 파죽지세로 진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9월의 가을비를 지나 11월

독일군은 혹한의 겨울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때 아시아에서 일본은 한창 중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이것이 만주사변으로 일어난

'중일전쟁'이었죠. 

 

 

당시 일본은 경제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식민지를 더욱 확보하려는 침략의 길을 걷게 

되는데 자원이 풍부한 중국의 만주를 

침략함으로써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쉽게 끝날 줄 알았던 중일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전쟁에 필요한 석유와 목재가 더욱더 필요했고

 

일본은 동남아 지역의 인도차이나 반도를 

노리게 됩니다. 그때만 해도 인도차이나반도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였는데

 

 

유럽 전선에서 전쟁을 벌이는 동안 식민지 관리가 

소홀해졌기 때문에 일본은 인도차이나 반도를

쉽게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러한 모습을 지켜보던 미국을 포함한

유럽국가들은 일본에 석유와 물적 자원 수출을

금지시켰고 장기전에 전력물자가 차단된 일본은

치명타를 입고 단단히 화가 났으며

 

무력으로 미국의 하와이와 

인도차이나 반도에 있는 동남아를 침공하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렇게 1942년 12월 7일

일본은 선전포고 없이 하와이의 진주만을 목표로 

미국 전진 기지들을 습격하며 본격적인

미국과의 태평양 전쟁이 시작됩니다. 

 

진주만 폭격 후 일본은 무서운 기세로 

동남아 지역을 확보하고 

 

당시 동맹이었던 독일과 이탈리아도 

일본의 태평양 전쟁에 지원을 나섰습니다. 

 

반대로 1942년 1월 미국, 영국, 소련 등

26개 국가가 워싱턴에서 [연합국 선언]에 

합의 하였습니다. 

 

 

전쟁 초기에는 미리 전쟁 준비를 해 온

독일과 일본을 포함한 추축국이 

유럽 전선에서나 태평양 전전에서 계속 

승리하였으나 

 

1942년 6월 미국이 전쟁의 판세를 뒤집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아시아 전선에서 일본과 태평양전쟁 중인 

미군에는 블랙챔버라고 불리는 암호해독팀이 

있었는데 이들은 일본이 전투 작전에 사용되는

암호를 해독하려고 부단히 힘썼으며 

 

마침 일본군의 무전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반복되는 단어사용에 주목한 결과 

 

 

그 암호가 바로 미드웨이 섬을 뜻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게 됩니다. 

 

그렇게 일본의 작전 암호를 파악한 미국은

일본보다 한발 더 앞서서 전투를 준비할 수 있었고 

 

미드웨이 섬 인근에서 탁월한 전투로 

해전을 격파하여 전쟁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합니다.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유럽전선의 독일은 

보급로가 멀어지고 제대로된 보급이 불가능해져

갔습니다. 

 

그리고 -40도의 혹독한 추위에 의해 

동상으로 사망하는 군인들이 대거 발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43년 1월에 소련은 스탈린그라드전투에서

독일군을 포위하여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혀

 

이 전투를 기점으로 소련군의 반격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 무렵, 미국과 영국의 연합군은 

북아프리카에 상륙하여 이탈리아를 공격했고

 

이에 파시스트 정부의 무솔리니는 무너지며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을 받아냅니다. 

 

 

또한 승세를 잡은 연합군은 

이듬해 6월, 아이젠하워 장군 지휘 아래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상륙작전을 펼치는데

 

프랑스의 노르망디 지역에 3주동안 

약 150만명에 달하는 병력을 상륙시켜 

독일군을 무찌르고 파리를 탈환하여 프랑스

해방을 성공시킵니다. 

 

 

전쟁의 승기는 연합국이 잡았으며

잠깐의 재정비를 마친 히틀러는

이제 판세를 뒤집는 모든 것을 건 도박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벌지전투'였습니다. 

 

전쟁 초기 독일이 프랑스로 침공했던

아르덴 삼림지대 돌파를 한번 더 재현하는 것으로 

남아있는 전차와 병력 자원을 대거 모아 

 

아르덴 숲 돌파를 계획한 것이죠. 

 

그리고 항공기에 의한 격렬한 폭격으로부터

부대를 숨기기 위해 작전 시기는 아르덴 숲이 

안개에 휩싸이는 겨울로 잡습니다. 

 

안개가 자욱한 12월 16일 독일군을 

파죽지세로 밀고 나갔지만 불과 1주일만에 날씨가

좋아지면서 전세가 역전됩니다. 

 

 

그리고 히틀러가 생각했던 것 보다 

연합군은 이 전투에 빠르게 대응했기 때문에 

벌지전투는 한달만에 패배로 끝이 납니다. 

 

1945년 4월 22일 

이제 소련군이 독일의 수도, 베를린까지 입성하고 

완전히 패배한 히틀러는 

참혹한 현실을 받아드려야 했습니다. 

 

그로부터 1주일 뒤, 히틀러는 베를린 지하 벙커에서

'에바 브라운'가 결혼 후바로 다음 날 

이 둘은 자살을 하고 죽은 모습으로 발견되며

 

 

유럽에서의 공식적인 전쟁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그렇게 독일마저 항복을 선언하고 

이제 남은 건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일본뿐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 영국, 소련이 

독일의 포츠담에서 일본과 식민지 처리 문제를

중점적으로 논의하는데

 

단호한 문장과 굳건한 의지를 표현하면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였으며

 

만약 그러지 않을 경우

모든 군사력을 동원하여 총체적 파멸을 당할 것을

경고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이 포츠담 선언에 대해 

'묵살한다'는 표현으로 거절하였고 

 

 

당시 일본과 중립조약(불가침)을 체결하고 있던

소련 또한 대일전에 참전하기로 연합국에 약속을 

했기 때문에 이제 남은 일은 일본에 대한

무력행사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마지막 경고에도 어깨에 힘을 주던 일본은

쓴맛을 보게 되는데요. 

 

미국이 초공위 요새 폭격기(B-29)를 태평양상의 

미국 티니안 기지에서 일본으로 조용히 발진합니다. 

 

8월 6일 일본인들의 눈 앞에는

폭력기에서 떨어지고 있는 조그만 물체의 모습이

들어왔고 그것은 그들이 이 세상에서 보게 된

마지막 풍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인류 최초로 핵폭탄이 떨어지고 

일보은 결국 항복문서에 서명을 하게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세력은 크게 

약화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 민주주의 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 진영으로 나누어졌고 

 

두 진영의 사상적인 이념 대립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세계를 반으로 분리시킵니다. 

 

그렇게 세계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날카로운

대립으로 일촉즉발의 긴장 상태가 지속되는

냉전체제로 돌입하게 됩니다. 

 

 

출처 : 궁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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