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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인사이트

결혼, 연애 안 해도 행복할 수 있다구! __________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

by 아트온다 2024. 3. 11.

 

 

 


 

 

 

★ 스스로 30대 백수 쓰레기라 부르는 남자의 이야기

누구도 관심 가질 것 같지 않은 30대 무직 남성

독립출판으로 세상에 나오다!

 

 

 


 

 

 

-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 / 김봉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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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   ||

저자 : 김봉철

30대 중반까지 블로그에 썼던 글을 모아 독립출판으로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 책을 냈다. 

 

 

 


 

 

 

-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 / 김봉철 -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 깼다.

시계를 보니 새벽 세시

달빛만 간신히 드는 자그마한 방에

다시 누웠지만 잠이 오질 않는다. 

나는 이 밤에 갇혀버렸다. 

-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 / 김봉철 -

 

 


 

 

30대 백수는 그런 것. 밤에도 갇히는 것. 홀로 있어도 감옥 같은 것. 누구도 구제해 줄 수 없고. 어느 누구도 이해해줄 수 없는, 이해받지 못한 30대 백수는 골방에 갇혀 자기만의 세상에서 스스로를 위로해가며 사는 것. 그런 30대를 봉애도 살았었노라고. 지금 이 시대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노라고. 봉애는 이미 10년 전에 20년 전에도 벌써 겪어서 새삼스럽지 않노라고. 봉애는 생각했다. 

 

봉애는 그랬다. “난 벌써 20년 전에 겪었는데, 왜 들 난리지” 청년들이 난리였고 뉴스가 난리였다. 취업을 힘들어 하는 청년들과 취업을 안 하는 청년들과 취업을 하고도 퇴사를 하는 청년들, 그런 청년들이 문제라고 말하는 어른들과 뉴스 소식들.

 

그건 청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문제죠!


 

문제였던 시스템 안에서 먼저 희생자의 삶을 살았던 건 봉애였다. 낭만적인 대학생활은 환상이었을뿐 현실은, 정확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아프고 멍망진창이고 부끄럽고 외롭고 정신은 나갔고 나간 정신을 되돌리는 건 술이거나 그냥 나간대로 놔두거나 선택의 여지 없이 현실에 갇혀 지내야 했던 봉애. 그래서 남일 같지 않았던 것. 저자의 쓰레기 같은 백수 생활 제목에 본능적으로 이끌렸던 것이다. 

 

필수 과목에 교양과목에 보충 수업에 매주마다 치뤄지는 시험에, 찾아 다녀야 했던 족보에, 영혼을 팔아서라도 만점 받을 수 있는 족보를 찾아 웃음을 팔며 남자 선배를 꼬셔야 했던 봉애, 진심 족보만 원했던 봉애에게 이상한 소문이 붙어 다녔다. 정말 친한 친구 아니면 공개하지 않는 족보를 선뜻 봉애에게 건넨 선배를 봉애가 좋아한다는 둥.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봉애는 어처구니 없었다. 족보 좀 달라는 데 거기에 왠 짝사랑? 왠일이냐구? 이렇게 없는 마음까지 팔아야 하는 것일까? 이 세계란? 그런 것일까? 

 

공부 능력이 좀 모잘라서 태생적으로 천재적인 것 같은 선배에게 족보 좀 달라고 했다고 이것이 과연 ‘당신 좋아합니다’의 표현이었을까? 뭐. 억울하기도 하고. 실은 딱히 이성적으로 그 선배가 마음에 들지도 않기도 하거니와 그저 봉애는 족보를 원했을 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문이 도는 건 봉애도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 세상 마음대로 되는 게 없구나. 이놈의 이미지 관리는 애초에 버렸다. 이상한 여자 후배로 남더라도 족보는 얻어야 했다. 족보가 아니면 인생 망가지는 줄 알았다. 그땐 나이 20대 초반이었고 대학생활에서 족보 말고 뭣이 중한디?


 

필수 과목 듣고 교양 과목 듣고 보충 수업까지 듣고 족보 찾아 이리 저리 뛰다 보면 정신없이 시간은 흘렀다. 집, 학교 도서관이 동선의 전부였는데 거리에서 흘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았다. 정신 없이 보내면 많은 걸 한 듯 했다. 아침부터 바쁘게 보냈고 밤 늦게까지 바쁘게 보냈으니까. ‘뭔가 한 거잖아.’로 뿌듯했다. 

 

실속 없는 뿌듯함을 갖고 집으로 돌아가면 더 실속 없는 공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시원. 예전에 불교 대학이었나, 하여튼, 이전에 어떤 용도로 사용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는 건물을 개조해 고시원을 다닥다닥 지었다. 그 고시원 방 중 하나를 봉애는 사용했다. 방은 또 얼마나 절절 끓는지 마치 온돌방에 있는 듯 했다. 한쪽은 너무 뜨겁고 한쪽은 차갑고. 책상과 다리 뻣고 누울 공간이 전부였다.

 

그것보다 가장 최악이었던 건 어둡고 컴컴한 공용 화장실이 밖에 있었다는 것. 화장실 세면대가 있는 공간 바로 위에 조명 하나로 간신히 그곳을 밝혀 주고 있었다. 칸막이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면 화장실을 문을 닫는 순간 조명 빛도 사라졌다. 컴컴했다. 무서웠다. 빨리 볼 일을 보고 더 재빨리 그곳을 빠져 나오는 방법밖에 없었다. 봉애는 그곳에서 몇 년을 생활했던 것일까? 


 

기억력이 좋지 않아 뜨문뜨문 기억이 나는데, 적어도 좋았던 기억은 하나도 없다. 무서웠던 화장실, 너무 뜨거웠던 방, 그리고 남자 후배가 방에까지 왔었던 기억. 이 정도만 남아 있다. 기억하고 싶지 않겠지. 대학생활의 낭만이 어딨냐? 그것도 있는 집안의 자식들이나 누리는 것이지, 봉애는 언감생심이다.

 

 

 

 

 


 

 

 

-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 / 김봉철 -

 

 

 


 

 

어렸을 때 엄마랑 아버지랑 맨날 싸웠는데요. 

아버지는 술 먹고 들어오시면 맨날 가스레인지 가스 호스 잘라서 불 붙여버린다고 다 같이 죽어버리자고 막 그러셨거든요. 엄마는 한쪽 구석에서 거의 기절할 때까지 맞아서 쓰러져 계시고. 

-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 / 김봉철 -

 

 


 

 

실은 많지 않았을까? 싸우는 부모. 이불 속에서 숨 죽여 가며 벌벌 떨어야 했던 아이들. 봉애도 떨었더랬다. 떨었다기보다 아무리 시끄러워도 잠을 자는 척 해야 했다. 잠을 자다고 깼는데, 엄마 아빠의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봉애가 자던 방은 단칸방. 싸우는 엄마와 아빠가 있었고 자는 동생과 봉애가 있었다. 그렇게 한 공간에 조용한 두 남매와 시끄러운 두 부모가 공존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10여년 간을 살았다. 엄마와 아빠의 인연이 끝나지 않는 이상 이 조합도 끝나지 않을 참이었다. 자주 싸웠던 시절을 지나 간헐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죽음’이라는 단어도 오갔고 피도 보였다. 화가난 아빠는 이성을 잃었고 누가 다치는 것을 조금은 생각하는 듯 물건을 던져도 사람을 빗껴 던졌다. 값이 안나가는 걸로. 주로 전화기였고. 전화기 몇개가 그렇게 사라진지 모르겠다. 

 

한 번은 유리가 깨진 것도 보았는데 그때 피도 함께 본 것 같다. 정확한 기억은 없다. 그냥 그랬던 것 같다. 머리가 알아서 기억을 지워주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충격적인 장면은 자극적이러서 더 기억에 남을텐데, 혹시나 트라우마로 남을까봐 알아서 뇌가 기억을 지워준 듯 했다. 그래서 봉애는 기억을 잘 못한다. 과거의 기억이 잘 없다. 잘 떠오르지도 않는다. 아마도 트라우마를 남길 현실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던 듯 싶다. 

 

 

 

 

 


 

 

 

-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 / 김봉철 -

 

 


 

 

가급적 이야기를 하지 않는 편이 좋다.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에게 내 진심을 내비칠 수록 나는 더 외로워지고 고립되는데 이유는 내 진심은 가난함이고 나의 진실은 게으르고 나태한 것이기 때문이다. 말은 가급적 하지 않는 것이 좋다. 

-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 / 김봉철 -

 

 


 

 

아이는 왜 낳는 건지. 저렇게 자기 멋대로고 자기 마음대로고 때쓰고 애 써줘야 하는 아이는 왜 저러는 건지. 확실히. 결혼 안한 자신을 뿌듯해 하는 봉애. 40이 넘어도 결혼할 이유를 찾지 못한 봉애는 적어도 결혼을 안 한 삶은 만족해 하고 있다. 뉴스에서 저조한 결혼은 더 저조한 출생률을 말하건, 그건 봉애의 삶과는 상관 없으니까. 

 

결혼도 애도 당사자가 행복해야 하는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나라 살림에 도움되기 위해 동물처럼 짝짓기를 하진 않아야 된다는 주의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은 그러지. 결혼은 왜 안 하냐?, 애를 낳아야 나라가 살지? 

 

나라 살기 위해 짝짓기를 해야 하는 것처럼 불행한 게 또 있을까? 나라가 결혼하면 행복을 보장해주나? 행복을 보장해 줄 만큼 예산을 적절한 곳에 쓰여진다면 생각해 볼 수도 있으나, 한국은 그렇지 않은 관계로 자연스럽게 비혼주의가 되는 것이다. 


 

덴마크처럼 기본소득 연 1800만원가량 보장해 준다면 ‘결혼’ 고려해볼 수도 있지. 이걸 대한민국 국민의 과반수 이상에게 설득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기간이 필요할까? 그래서 이곳 정치는 형편 없는 것이다. 정치를 하는 인간만 배부르고 정치와 관련 없는 인간은 정치 하는 인간들 배불리기 위해 일하고 세금 내는 인간으로 나락갈 뿐이다. 그런 삶을 내팽개치기 위해 봉애는 비혼주의를 선택했다. 

 

뉴스는 이제 그만 떠들어라! 결혼 안하고 취업 안하고 퇴사 해도 나름 다 꿈이 있다는 것을. 어쩜 기성 세대의 세상과는 다르게 다른 종류로 더 행복하게 산다는 것을.

 

봉애는 행복하다. 자신만을 위한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돈이 많아서도 아니고. 꿈이 있고 다르게 살 수 있는 의지가 있고 조금은 여백의 공간에 자신을 몰아 넣을 수 있는 맛을 알기 때문이다. 이 맛을 모르는 기성세대가 아무리 ‘청년이 문제라고 해도’ 그러거나 말거나. 

 

 

 

 


 

 

 

-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 / 김봉철 -

 

 


 

 

처량해 보였다. 그의 빈곤한 추억이. 가난을 이기지 못한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가난한 추억을 이기지 못한 그의 지난날들이. 그런데 아무리 긍정적인 나조차도 아버지가 안고 뛰었던 애가 나였는지 형이었는지를 기억 못하셨을 때는 조금 아팠다. 그의 추억이 빈곤함을 넘어 처량해 보였다. 

-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 / 김봉철 -

 

 


 

 

너무 여린 것일까? 자기 자신의 화조차도 주체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이었을까? 봉애는 아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자신의 삶을 이끌고 가는 것도 벅찬데 한번씩 아빠는 그리고 엄마는 봉애의 삶을 침범해 들어 왔다. 

 

‘대체 뭘 하면서 먹고 사는지’ 궁금해 하면서도 선뜻 도와주지는 않았다. 봉애도 딱히 도와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 나이가 먹은 것만으로도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이 나이쯤 되면 혼자서 알아서 사는 것이라고 봉애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20살이 넘어서 풍족하진 않았지만, 아니, 너무 가난한 대학생활이었지만 간간히 그래도 졸업은 하라고 돈을 보내주셨다. 졸업 하고 나서도 도움을 받았지? 취업하지 못하고, 언론고시 준비한답시고, 월급을 공백을 아마도 엄마였는지 아빠였는지 매워준 것도 같았다.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세상 다 품어줄 것처럼 너그럽다가도 술에만 취하면 이성을 잃었다. 너그러운 것은 너그러운 것이 아니었다. 너그럽게 보낸 세상에 대한 포용이 다시 돌아올 때는 ‘포용’의 모습이 아니었으니까. 급속 성장하던 시대에 먹고 살기 위한 아등바등에서 아빠는 너그러운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추즉건대 사회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아마도 집에 가져와서는 술로, 이성을 잃은 행동으로 푼 것 같다. 

 

하지만 포용은 사회를 향한 게 아니라 가족을 향했어야 되지 않았나. 하는 안타까움이 봉애에게 있다. 항상 마음이 외로웠다. 조금만 함께 해주면 안 될까?를 항상 빗겨나가던 엄마와 아빠는 여전히 봉애와 마음을 함께 하는 법을 잘 모른다. 

 

 

 

 

 


 

 

 

 

-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 / 김봉철 -

 

 


 

 

나는 비록 연애도 결혼도 틀렸기 때문에 아기를 낳을 수 없겠지만, 조카한테는 잘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어른들이 술 취한 틈을 타서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아무래도 나 같은 사람은 안 보고 자라는 게 아이 교육에 좋을 것 같았다. 

-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 / 김봉철 -

 

 


 

 

연애는 안 해도 무관하고 결혼은 더더욱 하기 싫고 아기를 낳는 건 더욱 더욱 싫은 것이었다. 다행이 이 모든 것을 안 하고 있는 봉애. 단 연애는 끊을 수가 없다. 어찌하여서 연애는 끊을 수 없는 것인가? 보면, 평범한 얼굴에도 그래도 조금은 괜찮은 얼굴. 결혼을 안해서인지 여전히 동안인 미모, 남들이 보면 대학생인줄로 알기도 하는데 대학 근처에 살었던 요 몇년 전에는 대학생 남자애들이 뒤 따라 와서는 연락처를 묻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자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고 인정해주고 보듬어 줄 수 있는 넒은 마음. 화나면 무섭지만, 이치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따지고 들지만, 극악무도한 모습을 보이기 전까지 남자들은 글쎄, 봉애라는 여자에 대해 그래도 관심은 갖는 것이었다. 

 

그래서 실은 연애의 공백이 없었던 봉애는 이제는 좀 지겹다고 말한다. ‘연애 좀 그만 하고 싶다!’ 이 마음 아는 사람 손!


 

이렇게 헤어지기 어려운 남자는 처음이다. 떼려고 하면 죽겠다고 말하는 남자에게 더 이상의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최악의 남자. 어쩌나 버틸 수밖에, 그래도 좋은 점 찾아서 왜 만남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지 스스로 명분도 찾아가며 안정을 취해야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텃밭과 정원이 있는 소소한 전원주택에서 아침에 일어나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살 받으며 차 한잔을 하는 마음의 여유. 집에서 작업을 하다가 지루하면 밖에 카페에 나가 작업을 하기도 하고 때론 타 지역으로 가서 며칠이고 숙박하면서 그곳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면 작업을 하기도 하고. 이런 삶. 살고 싶다. 

 

지금 준비중인 봉애는, 꿈꾸면 이루어 지리라는 사실을 믿고 있다. 가슴 벅차도록 원한다. 간절하게 애절하게 원한다. 나의 마지막 삶은 내가 그리는 모습으로 제발 살 수 있기를. 남친도 없이 오로지 홀로 서서 육체적이든 경제적이든 자립할 수 있도록. 그렇게 나의 하루에 기를 불어 넣는 중이다. 

 

 

 

 


 

 

 

-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 / 김봉철 -